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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모두가 즐거울 때 나라를 지킨 연평해전의 영웅들

떠찌 기자 2023. 5. 3. 11:18
연평해전의 참상_ <출처_메이저월드>

대한민국의 2002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바로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였으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 이래로 4강 신화를 이루는 쾌거를 누렸던 해였다. 2002년 6월 29일 역시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로 뜨거웠다. 모든 국민이 태극기와 응원봉을 들고 거리 나왔다. 너무나 즐거운 2002년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에서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 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일어난 중·소규모 교전이 있었다. 바로 제2연평해전이다.

 

 

연평해전의 참상_ <출처_메이저월드>

제2연평해전,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사투.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전 그날도 도합 2척의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었다. 이를 감지한 우리 해군은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참수리 편대는 편대별로 경비정 1척씩을 맡아 이들을 쫓아냈다. 진압이 순조롭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 357호에 선제 기습공격을 가함으로써 전투가 발발했다.

 

사격 대응 명령을 내린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환 부장이 지휘권을 인계받아 받아 대응하였다. 조타장인 한상국 상사 (다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에서 피격당해 전사하였다.

 

지휘권을 인계받은 이희완 중위(현재 대령)는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에도 진두지휘했으며, 0mm 시 벌컨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아비규환이었다. 무섭고 떨리는 상황이었다.

 

발칸 담당 병기부사관 황도현 중사 (당시 하사)는 적의 집중 사격 속에서 헬멧을 쓴 두부에 37mm 포탄을 맞아 두부의 3분의 1이 포탄 탄두에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로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하였고, 조천형 상사(당시 하사)가 21포에서 응전하던 도중 등산곶 684호정 함교 뒷편 포좌의 ZPU-4 14.5mm 4연장 고사총과 포대 37mm 2연장 기관포 등의 집중 사격을 받던 도중 포탑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질식사한 채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내연부사관 후원 중사(당시 하사)도 교전 중에 684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당하고 전사했다.

 

의무병 박동혁 수병(당시 상병)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하나 서후원 중사가 684호에 승조한 함상저격수에게 왼쪽 가슴 심장 부분에 7.62mm 총탄 한 발, 오른팔에 파편을 맞고 쓰러지자 분노하여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난사하다 적의 집중적인 소병기 사격에 재기 불능 상태가 되고, 이를 보다 못해 극까지 참은 분노가 터져 버린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하사와 박동혁 상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한다.

최초 보고는 5명 전사, 19명 부상, 실종 1명 무사고 4명이었다. 하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SSU 대원들에 의해 바다속에 가라앉은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제1연평해전의 복수.

제2연평해전을 일으킨 북한은 1999년 제1연평해전의 일반적 패배에 대한 보복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제2연평해전의 상황은 처음부터 완전한 함정과 노림수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이상한 것이 없다.

 

 

연평해전의 참상_ <출처_메이저월드>

그날을 잊지말자.

모두가 월드컵으로 즐거웠던 2002년, 뜨거운 응원에 열광하던 그때 연평도에서는 목숨을 건 사투가 있었다. 모두가 행복할 때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극심한 그곳에서 나라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다 가운데 내 던져야 했다. 그들의 나이 고작 20에서 30대 초반이었던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호국보훈의 달, 모두가 즐거울 때 나라를 지킨 연평해전의 영웅들

대한민국의 2002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바로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였으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 이래로 4강 신화를 이루는 쾌거를 누렸던 해였다. 2002년 6월 29일 역시 대한민국과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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