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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의 부활’
    힐링 2022. 9. 14. 12:58

    &rdquo;<사진출처_연합뉴스>&rdquo;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비(부여). 찬란한 문화와 우아한 예술이 꽃피웠던 백제의 마지막 역사가 이곳 사비에 되살아났다.

     

    백제의 탄생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건국 역사는 고구려의 동명성왕인 주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몽이 졸본 땅에 근거를 마련한 뒤 결혼한 소서노의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중 둘째였다. 주몽은 소서노와 그의 아버지인 연타발의 자본과 도움으로 고구려를 건국했다. 서기전 19년 동명성왕(주몽)의 본부인 예씨와 친아들 유리가 나타났고 동명성왕은 본부인 예씨와 친아들 유리를 각각 태후와 태자로 책봉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구려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소서노를 2번째 부인인 소후로 강등시켰다. 서기전 19년 9월 소서노는 두 아들인 온조와 비류를 데리고 고구려에서 남하해 내려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백제의 탄생 배경이다.

     

    백제의 수난과 ‘마지막 도읍 사비’

    백제는 한성(한양), 웅진(공주) 그리고 마지막 사비(부여)까지 총 세 번이나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광개토대왕의 위업을 계승하기 위해 남진 정책을 펼친 장수왕이 475년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공격한다. 백제는 7일 만에 함락되어 급하게 오늘날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한다. 금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어 농사짓기도 편하고,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요새 같은 곳이었지만 지형 자체가 넓지 않아 도시가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웅진성의 앞 금강은 바다와 연결되지 않아 해상무역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에 백제는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천도하게 된다. 사비는 웅진처럼 금강이 흐르고 부소산에 둘러싸여 있어 적의 침략에 대한 방어에도 수월했다. 게다가 웅진보다 넓은 평야 지대와 물길이 연결되어 있어 무역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도읍을 옮긴 성왕은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주변국인 중국•일본과 해상무역을 활발하게 이루었다. 중국의 불교문화를 받아들였고, 일본에 백제 문화를 전파해 일본문화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백제는 마지막 도읍 사비에서 220여 년 동안 화려한 백제의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웅진), 익산과 함께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백제 역사 유적은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하여 백제화한 증거를 보여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세련된 백제의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에 대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찬란한 백제 역사의 부활

    백제의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건축물은 당연히 거의 없고, 그림과 기록도 거의 없다. 이에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1993년부터 2017년까지 24년간 충청남도 부여군 합정리 일원에 백제의 마지막 왕궁인 사비궁을 비롯해 백제의 대표적 사찰인 능사•계층별 주거문화 및 생활 문화•백제 개국초기의 왕궁인 위례성•백제의 대표적 고분을 보여주는 고분 공원 등 백제 역사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백제사 전문박물관인 백제역사문화관을 조성했다.

     

     

    백제문화단지에서 만날 수 있는 백제의 모습

    사비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중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대백제의 왕궁이다. 사비궁은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덕전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14개 동의 규모다. 고대 궁궐의 기본 배치 형식을 따라 왕의 대외적 공간인 치조 권역을 재현했다. 천정전은 궁궐 내 상징적 공간으로 신년 하례식,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 및 왕실의 중요 행사에만 사용하는 공간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곳이다. 문사전은 동궁에서 사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업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은 동쪽을 의미한다. 외전은 연영전으로 신하들의 업무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무덕전은 서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이곳 역시 왕이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업무공간으로서 무덕전의 무는 서쪽을 의미한다. 외전은 인덕전으로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영물인 기린의 덕을 의미한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의 사찰로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된 유적의 원형과 같이 1:1로 이곳에 재현하여 건물 사이의 간격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 등을 같게 했다. 능사의 재현을 위하여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토된 금동탑편의 하양양식과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익산미륵사지석탑 등을 참고하였다. 능사의 가람배치는 백제시대 대표적 배치로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분공원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묘제를 보여주는 곳으로 사비 시대의 대표적 고분 형태를 재현했다. 이곳에 복원된 고분은 부여지역에서 출토된 고분을 이전 복원한 것이다. 고분은 석실분으로서 사비시대 귀족계층의 무덤이며, 백제문화단지 화계조성부지에서 출토된 석실분 4기와 부여군 은산면에서 출토된 석실분 3기 등 모두 7기가 이전복원 됐다.

     

    위례성은 고구려에서 남하안 온조왕이 터전을 잡은 곳으로, 미추홀에 자리 잡은 비류의 나라를 통합하고 난 후 백제의 수도로 자리하였다. 지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 유리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백제가 성장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던 위례성을 재현한 곳이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요즘 백제 문화단지를 비롯해 정림사지, 궁남지, 부소산성 등 부여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야간 개장을 진행하고 있다. 각 시설에 따라 일정은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하고 있다. 여러 색의 불빛을 따라 백제 문화재단지를 걸으면 낮과는 다르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비궁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비궁 아쉽게도 실제 건축물이 남아 있진 않지만 백제문화단지의 사비궁을 통해 당시의 분위를 느껴볼 수 있다. 고요하고 아득한 사비궁의 모습을 어떤 궁 못지않게 웅장하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달빛과 화려한 조명으로 어우러진 왕궁과 능사의 모습은 사진 촬영 하기 좋은 곳이며, 백제의 역사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체험과 프로그램, 공연이 진행되는 것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원문보기 : https://truch.kr/detail.phpnumber=3176&thread=37&utm_source=naver_blog_truch&utm_medium=healing&utm_campaign=travel&utm_content=22.09.14

    <참고자료> 백제문화단지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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